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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역사! (순삭정리)

by Blue Bloods 2021. 6. 26.
 

독일 국기

‘독일’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Federal Republic of Germany ‘독일 연방 공화국’입니다. 하지만 독일헌법이나 외교관계에서는 주로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영어로는 ‘저머니’(Germany), 프랑스어로는 ‘알마뉴’(Allemagne)와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국기는 1832년 전제군주에 항거한 시위에서 사용한 깃발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분데스플라거(Bundesflagge)라고도 불리는 독일의 국기는 검정, 빨강, 황금색으로 구성되는데요, 검정색은 인권 억압에 대한 분노를, 붉은색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황금색은 진리를 상징합니다. 독일의 국기는 히틀러의 나치정권 시기인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붉은색 배경에 ‘하켄크로이츠’ 문자를 새긴 나치독일의 국기로 잠시 변경되기도 하였으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다시 지금의 국기를 부활시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

유럽 중부에 있는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Berlin)이며, 북쪽으로는 북해와 덴마크, 동쪽으로는 체코, 폴란드,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 서쪽으로는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35만 제곱킬로미터로 세계 62위이며 이는 약 10만 제곱킬로미터의 한국보다 3.5배 정도 큰 크기입니다. 독일의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8,200만명으로, 세계 19위로, 터키와 인구수가 비슷하며, 이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독일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3조 6000억 달러, 이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전 세계 4위에 해당합니다. 인구의 대부분은 게르만족이며, 유태인·슬라브인 등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공용어로는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종교는 신교와 구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신교는 주로 북부와 동부에 분포, 구교는 남부와 서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프랑크 왕국

북유럽지역에 머물던 게르만족은 기원전 2세기경 남하를 시작하여, 현재의 라인강과 도나우강 유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기원전 50년경부터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이 정착해 살던 지역을 차지하려고 수차례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요,  특히 기원후 9년, 아우구스투스가 이끈 로마대군이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게르만족 연합군에 대패하면서 그 뒤로 로마제국은 라인강 건너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기원후 4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훈족의 압박 등으로 인해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합니다. 이 때, 갈리아 북부 지역에 정착한 프랑크족이 유일하게 존속하여,

프랑크왕국으로 게르만계 부족을 통합하게 됩니다. 481년, 클로비스 1세에 의해 세워진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처음에는 프랑스 북부와 네덜란드 남부, 독일 중서부 지역에서 시작해서 점차 영토를 확장해나갔습니다.

 

 

특히 메로빙거 왕조에 이어 등장한 카롤링거 왕조 시기, 카롤루스 대제는 활발한 영토 확장을 감행하며 프랑크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력한 통치자였던 카롤루스 대제가 사망한 후, 영토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겪습니다. 결국 프랑크왕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과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인해, 동, 서프랑크 제국으로 분열되었고, 셋째 아들이었던 루트비히 2세는 현재의 독일지역인 동프랑크왕국을, 차남이었던 카롤루스 2세는 지금의 프랑스지역인 서프랑크왕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동프랑크왕국은 카롤링거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루트비히 4세가 후사없이 죽자, 이어 즉위한 콘라드 1세 역시 일찍 사망해, 당시 가장 유력한 제후였던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가 국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하인리히 1세의 뒤를 이어 936년 독일왕으로 즉위한 오토 대제는, 국경을 견고히 하고, 이탈리아의 내란을 진압하는 등 카롤루스 대제에 이어 다시 한번 중부유럽의 패권을 확립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한편, 오토 대제는 내부적으로는 왕권에 대항하는 귀족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교회와의 결합을 시도했고,  962년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아 신성로마제국이 시작되는데요. 그 후 13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황제시대’로, 역대 독일국왕은 모두 황제의 칭호를 가지게 됩니다. 고대시대부터 게르만족은 하나의 정치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부족으로 나뉜 상태를 유지했었는데, 여러 제국을 거치면서도 제후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독일 내부의 문제보다 이탈리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치중했고, 제후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1256년부터 17년간 제후들간의 알력다툼으로 새로운 황제가 선출되지 못하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대공위시대’가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1356년 카를 4세가 혼란을 수습하고자, 7선제후의 황제선거를 규정한 금인칙서(Goldene Bulle)를 공표하였습니다. 금인칙서는 강력한 공국을 다스리는 선거후(選擧侯,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신성로마제국의 선거인단이다. 선거후라고도 한다. 선제후는 백작, 공작 그리고 대공과 같이 대단히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위계상 신성로마제국의 봉건 제후들 가운데 왕 또는 황제 다음으로 높았다. 출처 : 위키백과) 7명이 황제를 선출하도록 규정한 법이었는데, 15세기부터는 오스트리아대공국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황제자리를 독차지했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1517년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였던 마틴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공표, 로마가톨릭교회 타락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면죄부 판매로 수탈을 일삼는 로마교회와 황제권 강화에만 집착하는 카를 5세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있던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종교개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그 당시 황제 카를 5세는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바로 저지하지 못했고, 결국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를 통해 황제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존을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이후에도 종파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1618년 보헤미아 신교도의 반란이 계기가 되어 30년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 국제적 규모의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국토는 극도로 망가졌고 인구도 급감하는 등 피해가 심해졌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 종교적 평화는 달성되었지만, 독일은 크고 작은 30여개의 공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가장 막강해진 독일의 제후국은 프로이센이었습니다. 

프로이센

프로이센은 17세기초 라인강변에 영토를 얻어 급속히 성장하였고, 30년전쟁 이후로는 국가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관료제를 정비하고 상비군을 설치하여 절대왕정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18세기 중엽, 계몽전제군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와 치른 왕위계승전쟁과 7년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어 프로이센을 유럽강국 중 하나로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1789년, 프랑스에서 터진 프랑스혁명은 독일에 큰 위기로 다가왔 니다. 혁명프랑스군의 활약으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크게 패한 것입니다. 뒤이어 독일을 침공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쳐부수고 라인동맹을 결성하여, 1806년 신성로마제국의 최종적 해체를 가져왔습니다. 이로 인해 프로이센은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타도 이후 1815년 빈체제가 수립되었고, 제국을 대체하기 위해 총 39개의 주권국가로 구성된 독일연방이 생겨나면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독일연방의 핵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1862년 프로이센의 총리가 된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은 언론과 민중이 아닌 철과 피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른바 ‘철혈정책’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을 이끌었습니다. 프로이센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과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에서 모두 승리하며 독일의 패권을 장악하고, 1870년 드디어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1890년 비스마르크가 은퇴한 후, 왕위에 오른 젊고 모험적인 황제 빌헬름 2세는 범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신항로 정책’을 펼치며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 등과 제국주의적 대립을 격화시키며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불러왔고, 결국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20세기 초반 유럽 열강들이 각자의 세력을 팽창시키던 와중에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자, 삼국동맹이었던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삼국동맹의 나머지 한 나라였던 이탈리아는 처음부터 동맹에 등을 돌렸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협상에 포위당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5년간 이어진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측의 승리로 끝이 났고,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을 맺으면서 독일은 엄청난 금액의 보상금을 갚아야 했으며, 나미비아, 카메룬 등의 해외 식민지를 대거 잃게 됩니다. 1차 대전의 패배로 제국이 몰락하고 바이마르공화국이 수립된 독일은 1929년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으로 전후배상금을 지급하기도 어려웠고, 무계획적으로 마르크화를 찍어낸 탓에 하이퍼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보이던 독일인에게 새로운 비전과 미래를 제시하며 등장한 나치라 불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등에 업고 총통이 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의 패배 결과였던 전쟁배상금 지급중단을 주장하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고 폴란드를 침공하는 등, 파죽지세로 유럽을 점령해갔지만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1941년부터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대세가 뒤집어졌습니다.

 

 

동독 서독

결국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오랜 기간 계속된 전쟁이 막을 내립니다. 전쟁 이후, 독일은 1949년 포츠담 협정에 의해 미국·영국·프랑스가 관리하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소련이 관리하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지역으로 나뉘게 됩니다. 서독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아 통화 개혁을 실시하고 1950년대 초부터 가파른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나, 소련식 계획경제를 받아들인 동독은 공산주의세력이 국가 경제와 사회를 통제하면서 정치적 자유는 억압받고 경제발전은 낙후되었습니다. 1987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이 개방정책을 펼치게 되면서 동독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어나게 되었고,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이듬해인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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