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 (순삭정리)
먼 옛날 일본 열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걸어서 일본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약 1만 년 전 대륙과 일본이 분리됩니다. 일본의 신석기시대인 조문 시대,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서 일본 열도는 현대의 혼슈, 시코쿠, 규슈, 푸카이도 4개의 큰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분리됩니다.
물을 건너왔다고 하여 도래인이라 불리는 이주민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에 유입됩니다. 이들은 벼농사 기술을 들고 와서 농법을 전수했고 이를 계기로 신석기 야요이 시대로 넘어갑니다.
섬에 곡물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레 계급이 생겨났고 왕이 지배하는 작은 국가 등이 생겨 납니다. 기원 후 일본은 '왜'라는 이름으로 중국 문헌에 최초 등장하게 됩니다. 기원전 4세기경 호족 연합인 야마토 정권이 최초로 일본을 통일합니다. 이 시기를 고훈 시대라 합니다. 야마토 정권은 고구려를 피해 도망 온 백제인과 가야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는데요, 이 백제에서 온 도래인들을 대접해 주면서 불교 유교 한자와 같은 선진 문물을 열심히 흡수합니다. 자연스레 도래인들은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권력을 잡게 됩니다. 6세기 말 나라의 기틀이 마련된 아스카 시대 시작됩니다. 막강한 권력을 쥔 소가 가문의 수장 소가노우마코가 쇼토쿠 태자를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쇼토쿠 태자는 한반도에서 넘어온 불교를 공인하면서도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곧장 중국에 파견을 보내 선진 문화를 도입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일본은 중국 수나라 황제에게 보낸 문서에서 아주 도발적인 말을 했습니다. '해 뜨는 나라의 천자가 해지는 나라의 천자에게'라는 문구를 쓴 건데요, 어차피 수나라가 고구려를 넘어서 섬나라 일본을 침공하지 못할 걸 알고 있다는 것이죠. 고립된 섬나라 특성상 대륙의 외교 트렌드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겁니다. 그러던 중 나카오노에 왕자가 정권을 장악하며 눈에 거슬리던 소가 가문을 제거하였고 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 정치를 펼치기 위해 다이카 개신을 공포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는데요.
673년 즉위한 덴무 덴노(왕), 국명을 일본으로 바꾸고 군주를 천황으로 부르도록 하면서 본격적인 율령제 중앙집권 국가로 재탄생합니다.
794년 간무 덴노가 현재의 교토인 헤이안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자주적인 문화를 꽃피웠는데요, 이 시기를 헤이안 시대라 합니다. 그런데 점차 외척과 귀족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천황의 권력은 약해지게 되는데요, 이 시기 주목할만한 황실 외척은 후지와라 가문입니다.
후지와라 가문은 외척의 힘으로 어린 천황을 즉위시켜서 섭정직을 맡다가 천왕이 성인이 되면 관백직을 번갈아 맡으며 나라의 권력을 독점합니다. 이때 후지와라 가문의 정치 형태를 섭정과 관백을 합쳐 합쳐서 섭관정치라 부르는데요, 이러한 섭관 정치가 11세기 후반까지 150년 동안 지속됩니다.
한편 지방에서는 호족과 부농들이 자신들의 농지를 사유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무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들이 발전해서 사무라이 계층이 됩니다. 사무라이들은 점점 실력을 인정받고 강력한 세력이 됩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 조정을 장악하던 헤이시와 지방 세력인 겐지가 전쟁을 벌이는데요, 결국 겐지가 전국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들은 가마쿠라 지역에 사무라이가 정치하는 막부 체제를 만들어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데요, 이렇게 일본 최초로 사무라이에 의한 가마쿠라 시대가 시작됩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가마쿠라 막부의 수장, 쇼군이 되었는데요, 얼마 못가 외척인 호조 가문에게 권력을 뺏기게 됩니다. 13세기 후반에는 대륙의 레이더 망에 잡히게 되는데요, 쿠빌라이 칸의 지시로 지시로 원나라와 고려가 일본을 침략하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생한 태풍인 가미카제 덕분에 일본은 여몽 연합군을 운 좋게 물리치게 됩니다. 이때 참전에 대한 포상 문제가 발생하면서 막부를 향한 사무라이들의 지지가 약해집니다
그러다 1333년 고다이고 천황이 막부와 멀어졌던 사무라이들과 손을 잡고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킵니다. 막부에게 빼앗긴 황권을 되찾기 위한 일이었죠. 하지만 가마쿠라 막부가 붕괴한 후에도 약 600년 동안은 무사들의 실권 장악이 계속 이어집니다. 사무라이들이 황제를 도왔더니 이번엔 황제가 공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안 해 준 겁니다.
그래서 1336년 천황에게 불만을 품은 사무라이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의 정부와 맞서게 됩니다. 시기를 남북조시대라 하는데요,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북조에 새로운 천왕을 옹립합니다. 쇼군이 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교토에 무로마치 막부를 세웁니다.
한편 남쪽으로 쫓겨난 고다이고 천황이 자신이 여전히 황제라고 주장하면서 이 나라에 두 명의 황제가 존재하게 됩니다. 남쪽의 왕실은 무려 57년이나 버티다가 1392년 북조의 천황에게 흡수되면서 남북조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무로마치 시대는 혼란한 시기였지만 쇼군 중심의 무가 문화를 매개로 전통문화에 대륙 문화까지 폭넓게 융합되면서 일본만의 세련된 문화를 꽃피웁니다. 이때 일본의 대표적 전통 문화인 다도와 꽃꽂이가 이 시기에 형성됩니다.
한편 무로마치 막부는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망한 후부터 차기 쇼군 계승 후보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데요, 지방 영주들인 다미묘들이 각각 다른 쇼군 후보를 지지하면서 1467년 오닌의 난이 발생했고 11 년이나 지속됩니다.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동군은 24개국 16만 명, 야마나 소젠의 서군은 20개국 9만 명의 군사가 동원됩니다. 주요 전쟁터인 교토는 불태워져 황폐해지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난립하면서 내전이 더 심해집니다.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전쟁 중지를 명했지만 나중엔 포기하고 매일 연회나 열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오닌의 난이 흐지부지 끝났지만 교토는 숙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닌의 난 이후에는 무로마치 막부와 쇼군의 권위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쇼군보다 땅 많고 힘센 사람이 최고라는 인식이 생겨 나면서 하위자가 상위자를 압도하는 하극상 풍조가 사회 각층에 만연하게 됩니다.
이후 약 100년간의 전쟁, 전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 전국 시대에는 힘을 스스로 키워서 지역을 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전국 다이묘 세력이 나타났는데요, 전국 다이묘는 일본 사무라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봉건 영주였습니다. 더 많은 영지 확보를 위해 동맹과 배신을 거듭하니 전쟁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1573년 중부 지배 세력으로 성장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하는데요, 노부나가에 의해 전국 통일을 이루나 싶더니, 1582년 '혼노지'라는 절에서 부하에 의해 사망합니다. 이 사건은 혼노지의 변이라 합니다.
오다 가문의 졸병으로 출발해서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성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계기로 천하 통일의 꿈을 키우며 반대세력을 제거해 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에 성에 쌓고 훗날 전국 통일을 위해 일 할 중심지로 삼습니다. 그는 천한 출신 때문에 쇼군 지위를 얻지는 못했으나 조정에 의해 관백으로 임명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주요지를 직접 관리하며 농민들의 무기까지 거둬들입니다. 일본 각 지역을 차례차례 굴복시키다가 결국 1590년 전국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반대파 다이묘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명나라를 치기로 합니다. 조선에게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 달라고 했으나 조선이 이를 거절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조선 침략을 시작합니다. 1592년 다이묘들의 158,000명 부대를 이끈 일본군이 한 달 만에 한양을 점령하면서 조선을 궁지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조선의 장수 이순신이 바닷길을 막았고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저항에 부딪히다가, 명나라의 대규모 지원까지 합세하자 일본군은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결국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조선 침략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막부에서는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세력 싸움이 벌어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핵심 세력이었던 문관 계층과 지방의 유력한 무장세력이 후계 권력을 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1600년 격돌 끝에 지방 무장세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합니다. 그는 1603년 쇼군이 되어 자신의 근거지인 에도(도쿄)에서 새로운 막부를 수립합니다. 250년 넘게 쇄국 체제를 유지한 에도 막부,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동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물결이 더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페리 제독이 무력을 앞세워 일본에게 개항을 요구합니다. 결국 에도막부가 미국에 굴복하여 조약을 맺자 하급 사무라이 계층이 들고일어납니다. 이들은 왕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치자는 존왕양이의 명분을 주장하며 서양 세력을 테러 형태로 저항합니다. 존왕양이의 중심은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었습니다. 존왕양이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명분이 되어서 구체제인 봉건제도와 막부를 갈아엎고 천왕 중심 국가체제를 세우게 만듭니다. 그러나 초반에 내걸었던 존왕과 양이 중 오랑캐를 내쫓자는 양이의 명분은 슬쩍 포기한 채 오히려 근대화를 앞당기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게 되는데요, 본래 적을 알기 위해 서양으로 밀항한 이들이 서양의 발전된 경제와 제도를 실제로 보자 전면 개방이 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존왕양이 파는 새로 즉위한 메이지 덴노와 함께 전면적인 국가 개혁을 시작합니다. 이를 메이지유신이라 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근대화에 성공합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성립하여 있고 정치적으로는 입헌 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됩니다.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서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 구조의 전 분야에 실행시킵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복종적인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해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데요, 1894년 청일 전쟁으로 아시아 강대국 청나라를 이기고 1904년 러일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을 물리친 후, 무력으로 한국을 침탈해 식민지로 만들면서 단숨에 아시아 신흥 강국으로 평가되게 되었고 일본 사회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영일 동맹을 근거로 연합국에 가담하여 참전하게 됩니다. 일본은 참전 직후부터 동아시아 세력 확장에 주도적이었는데요, 독일 조차지였던 산둥성의 청도를 점령하고, 중국 원세개 정부에 21 개조 요구를 강요하면서 중국 주권을 침해하기 시작합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은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났으며 일본은 전쟁 권익을 재확인받게 됩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빠져버린 일본, 1937년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우고 중일 전쟁과 난징 대학살을 일으킵니다.
중일전쟁 후 미국은 일본의 대 아시아 확장 정책에 반감을 느꼈고, 계속 그렇게 나아가면 석유 같은 중요 물자를 안 팔겠다는 초강수를 던집니다. 이에 이성을 잃은 일본,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권 전체를 침략해서 깡그리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키웠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으로 대패하고 전쟁을 지속할 물자와 기반의 한계가 다다릅니다. 일본은 이 부족한 보급을 총검 돌격으로 메꾸기 위해 일명 자살적 돌격이라고 표현되는 반자이 어택을 강구합니다. 또한 자폭 전술 자살 공격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가미카제 전술도 강구합니다. 가미카제는 정부가 나서서 주도한 일명 강제 인간 폭탄 시스템, 전쟁터에 도착하자마자 파일럿과 전투기라는 고급 자원을 적의 군함에 충돌시켜 자폭시키는 막장 전술이었습니다.
일본이 이러한 기행을 반복하며 끈질기게 저항하자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결단을 내립니다. 이로써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일본은 마침내 행복합니다.
주권을 상실한 일본에 의해 강제 점령되었던 식민지와 점령지가 해방됩니다. 그리고 일본은 연합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패전 후 미국 맥아더 휘하의 군정기를 거치며 경제가 피폐해진 일본,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유엔군 병참 기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쟁 특수를 맞았고 어부지리로 공업 기반을 재건하게 됩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통해 군정으로부터 독립하여 주권을 되찾게 되는데요, 발 빠르게 전국을 복구하고 반공 정책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신뢰를 다시 얻어가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전폭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전쟁 폐허의 흔적을 지우고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국가경제가 흔들립니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암울한 시기가 이어집니다. 2012년 자유민주당이 다시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하면서 2021년 현재까지 자유민주당 소속 아베 신조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가 총리를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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