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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 순삭정리[1]

by Blue Bloods 2020. 8. 16.

프랑스 역사!

오랜 기간 유럽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프랑스는 유럽 대륙 서부에 위치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북쪽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하며 서쪽과 남쪽은 각각 대서양과 지중해를 접합니다. 기원전 약 7세기경 이 땅에 켈트 족이 정착하고 점차 프랑스 거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때의 로마인들은 이들을 갈리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들이 지배한 지역을  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인의 직접적인 조상인 갈리아인들은 금발의 흰 피부, 거대한 몸집을 지닌 전투적인 민족이었는데요, 전성기 때의 갈리아인들은 로마제국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땅을 차지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산만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인지 통일국가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갈리아는 이웃나라 로마제국과 전쟁을 자주 벌였는데요, 기원전 58년 로마에서 명성이 높아진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을 시작합니다. 수년에 걸친 전쟁 끝에 카이사르는 100만 갈리아인의 피를 뿌리며 갈리아를 정복합니다. 이때부터 갈리아는 로마화 되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통치는 갈리아인들에게 있어 큰 재난인 동시에 또 다른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힘겨운 진통을 겪은 갈리아는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많은 도시가 요새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 시기에 건설된 수많은 도시들은 현재 프랑스의 유명 도시가 됩니다.

 

2세기 후반부터 혼란에 빠진 로마 제국에 내전이 빈번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북방의 게르만 족이 로마를 침입하는데요, 이런 위기를 해결하려는 로마가 갈리아에 엄청난 세금을 물리자 260년 갈리아 장군 포스투무스는 스스로 왕이 되어 갈리아 제국을 세웁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로마는 다시 갈리아 지배권을 회복하는데,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진 갈리아인 의 반란은 로마 대제국이 붕괴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편 로마의 국경선을 뚫고 계속 밀려 들어오는 게르만족은 동고트, 서고트,  프랑크 등 수많은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4세기 동쪽에서 밀려드는 훈족의 압박으로 인해 게르만족의 이동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406년 겨울 게르만 족은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에 들어갔고 쇠약해진 로마제국은 그저 이들의 성장을 맥없이 지켜봅니다. 게르만 부족이 갈리아에 들어와 세운 왕국 중에서 후대 프랑스에 제일 큰 영향을 준 나라가 이때 탄생하는데요,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의 클로비스가 갈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프랑크 왕국을 세웁니다. 이로써 메로빙거 왕조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프랑크 왕국을 시작으로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 클로비스, 전쟁 상황이 불리해지자 다급해진 그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만약 회생 기회를 준다면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겠다는 기도였는데요, 정말 기적적으로 상대편 내부에 혼란이 일어났고 클로비스는 결국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후 클로비스는 군사 3천 명과 함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합니다.

 

이후 메로빙거 왕조의 지배권이 약화되면서 왕실을 관리하던 궁재들에게 실권이 넘어가는데요, 이때 프랑크 왕국을 침략한 이슬람 군을 궁재인 샤를 마르텔이 격파하게 됩니다. 741년 샤를 마르텔이 세상을 떠나자 피핀 3세와 형 카를로만이 프랑크 왕국 궁재 자리를 물려받는데요, 746년 형제의 결전 끝에 피핀이 카를로만을 무너뜨리고 역사상 교황이 국왕을 위해 거행한 첫 대관식을 거행하면서 새롭게 카롤링거 왕조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후 피핀 왕이 아들 샤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요, 그는 재위 수십 년 동안 약 50여 차례 전쟁을 벌이고 유럽 중서부를 정복하면서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샤를은 반대파를 피해 감옥에서 탈출한 로마 교황이 다시 교황의 지위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데, 800년 샤를이 로마를 방문하자 그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교황이 친히 교외까지 그를 영접하러 나옵니다. 당시엔 황제가 방문했을 때만 교황이 영접하라 나갔는데요, 결국 로마 교황에 의해 샤를은 로마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로 임명되었고, 샤를 대제라 불리게 됩니다. 따라서 프랑크 왕국은 샤를 제국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의 제국은 자연스럽게 고대 로마 제국을 잇게 됩니다. 이렇게 전성기를 달리던 샤를 제국도 샤를 대제가 죽자 세 손자들의 암투로 분열됩니다.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면서 샤를 제국의 역사는 끝이 나고 동 프랑크 왕국, 서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으로 3등분 됩니다. 이때 동 프랑크 왕국은 후에 독일로 발전하게 되고, 샤를이 물려받은 서 프랑크 왕국은 얼마 뒤 프랑스 왕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프랑스 역사가 시작됩니다.

서 프랑크 왕국의 샤를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10년간 3명의 국왕이 평범하게 살다 일찍 죽는데요,   987년 루이 5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위그카페가 새롭게 왕으로 추대되었고  프랑스는 카페 왕조 시대로 들어섭니다. 위그카페는 강력한 왕권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 각지의 귀족들이 마음대로 영지를 자기 땅으로 만들어서 자기 자식들한테 물려줍니다. 1137년 루이 7세는 프랑스 경제와 문화 발전에 힘썼는데 이때 그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착공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1180년 아들 필리프 2세가 즉위한 뒤 귀족들의 위세를 꺾으면서 왕실의 권위를 크게 높이는데요, 그는 영국 왕자 리처드와 연맹을 맺고 영국 왕 헨리 2세와 싸우도록 부추깁니다. 그렇게 필리프 2세는 어부지리로 영토를 일부 얻어 내는데요, 그 뒤 영국의 사자왕이라 불리던 리처드가 즉위 하자 필리프 2세는 이번엔 사자왕 리처드 동생인 존에게 형과 왕위쟁탈을 벌이도록 부추깁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왕이 된 존은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땅을 하도 일어서 실지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필리프 2세는 영국을 무찔렀다는 업적 외에도 파리라는 세계적인 도시를 수도로 결정했다는 업적도 남기는 데요, 이때 성벽과 도로를 수리하면서 파리의 모습을 재정비합니다.

파리

1328년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카페 왕조도 막을 내리는데요,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보 중 가장 유력한 인물은 필리프 4세의 외손자였던 영국의 에드워드 3세였는데, 프랑스인들은 이 영국인이 자신들을 통치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프랑스 태생인 필리프 드 발루아를 새 왕으로 지지합니다. 결국 그가 필리프 6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1328년 발루아 왕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이를 보고만 있지는 않았는데요, 자신이 후계자이니 프랑스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안 그래도 원한이 깊었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중 하나인 백년전쟁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려 100년간 전쟁을 지속하는데요, 1348년에 들어서는 무시무시한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흑사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아집니다.

 

국왕 필리프 6세도 흑사병으로 죽고 인구가 줄어서 양국이 타격을 입으니 10년간 전쟁을 멈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1355년 영국에 의해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영국군은 기세 좋게 프랑스를 눌러 갔고 프랑스 북부 사람들은 영국군의 살인과 약탈의 시달립니다. 그러나 전쟁 후반기 쓰러져가는 프랑스를 구원할 영웅이 등장합니다. 바로 평범한 시골 소녀였던 잔다르크인데요, 잔다르크는 13살 때부터 계속해서 신의 계시를 받습니다.

잔다르크

계시의 내용은 그녀가 프랑스를 이끌어 영국을 물리치고 왕세자 샤를을 왕으로 만드는 게 그녀의 사명이라는 건데요, 잔다르크가 서서히 자신의 운명을 깨달을 즈음 왕세자 샤를은 영국에 의해서 프랑스 남부까지 밀려난 상황이었고 프랑스 국토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남은 남부마저 함락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잔 다르크는 고향 근처에 있던 장군을 찾아가 계시를 설명합니다. 장군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녀의 전쟁에 대한 예언이 맞아떨어지자 정말 잔다르크가 프랑스의 희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왕세자 샤를을 만나게 해 줍니다. 왕세자 샤를과 귀족들 모두 잔다르크를 의심했지만 잔다르크가 샤를에게 샤를만 알고 있던 비밀을 말하자 결국 왕세자는 그녀를 신이 프랑스를 구원하려고 보낸 사자라고 믿게 됩니다. 1429년 4월 잔다르크는 수천 명의 프랑스 군인을 이끌고 용감하게 전장으로 향합니다. 

 

그녀의 지휘로 프랑스는 영국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게 되는데요, 결국 샤를은 대관식을 가지며 샤를 7세로 등극했고 그의 옆에는 손에 깃발을 든 잔다르크가 함께 있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잔다르크의 명성에 귀족들의 질투는 커져만 갔고, 결국 그들은 남몰래 그녀를 해칠 계획을 세웁니다. 프랑스 귀족에 의해 영국으로 팔려간 잔다르크는 결국 마녀로 판정당했고, 1431년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잔다르크가 조국에 바친 젊은 피로 인해 1453년 프랑스는 100년 간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잔다르크는 교황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고 이후 수백 년 동안 프랑스 인들의 숭배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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