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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 순삭정리[2]

by Blue Bloods 2020. 8. 17.

 

프랑스 역사! 순삭정리!

 

이렇게 왕권이 강화된 프랑스에서 용맹함과 낭만을 모두 갖춘 프랑수와 1세가 왕위에 오르는데요, 어릴 때부터 예술을 사랑했던 프랑수와 1세는 훌륭한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초청해서 든든하게 후원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인데 그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모나리자 작품을 남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렇게 프랑스 르네상스 전성기의 초석을 다진 프랑수와 1세는 즉위하자마자 이탈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밀라노를 잠시 쟁취하기도 합니다.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여러 걸작을 남기는데요, 대표적으로 샹보르 성, 루브르 궁전, 퐁텐블로 궁전이 있습니다.

르부르 박물관

1520년 대부터 프랑스에 전해진 칼뱅 사상으로 신교도들이 생겨나는데 이들은 동맹자라는 의미의 위그노라 불렸습니다. 기존의 가톨릭과 신교도 위그노가 충돌하면서 1562년 위그노 전쟁이 발발합니다. 앙리 4세는 양쪽 모두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면서 30년간의 종교 전쟁을 끝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1643년 루이 14세가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등극하는데요 성인이 된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열게 됩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루이 14세는 약 70년간 통치하면서 프랑스 절대 왕정의 전성기를 엽니다.

루이 16세

그는 귀족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파리 교외에 28년에 걸쳐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떠나 베르사유 궁에 머물도록 합니다. 이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거대하고 장엄한 왕궁으로 이름을 떨치는데요, 이곳에서 많은 녹봉을 받으며 점차 유희에 빠져든 귀족들이 본인들이 관리하던 영지의 국민들과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이런 식으로 귀족 세력을 약화시킵니다.

 

그는 왕권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용납하지 않았는데요, 1682 년에는 왕권이 교황보다 높다는 주장을 선언하고 종교 통일을 위해 신교도들을 숙청합니다. 이렇게 프랑스는 순수 가톨릭 국가로 뒤바뀝니다. 또한 그는 유럽을 재패하기 위해 여러 정복전쟁을 펼치는데요, 전쟁으로 인해 재정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후 프랑스는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루이 16세가 즉위했을 때 프랑스는 이미 빚더미에 나앉은 상태였습니다. 왕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가 하늘을 찌르고 현실을 회피한 루이 16세가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동안 화려한 궁 밖에서는 혁명의 바람이 일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볼테르와 루소 같은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새로운 세계관을 접한 프랑스인들은 신분제와 절대군주제가 당연하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벗어나 평등과 자유에 눈을 뜨게 되는데요, 그렇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였고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프랑스인들이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승리를 거둡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인권 선언문이 선포되고, 1792년 국민의회가 군주제를 폐지했으며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하는 공화정을 선포합니다. 이 혁명의 불길로 1793년에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공개 처형을 당합니다.

루이 16세 단두대 처형 장면

이후 정권을 장악한 자코뱅 파가 공포정치를 시행하자 결국 반동이 일어났고 반복되는 권력 투쟁으로 프랑스 혼란이 극심해집니다. 하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법, 이 혼란기에 등장한 이가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1799년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가 귀국한 나폴레옹이 군대를 파견하여 의회를 해산시키고 순식간에 정권을 잡게 됩니다.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내전과 외교에서 모두 훌륭한 성과를 냈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1804년 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공화국이 끝나고 나폴레옹 제국이 시작됩니다. 그가 건설한 제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제1제정이라 부릅니다. 나폴레옹은 이후 주변국을 정복하며 세계에 명성을 떨치다가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면서 섬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섬에서 탈출해 파리에 다시 입성해 프랑스 황제에 복귀합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이 똘똘 뭉쳐서 워털루 전투에서 그를 격파하자 나폴레옹의 황제 복귀는 이른바 100일 천하로 끝이 납니다.

 

이후 왕정복고로 루이 18세가 등극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데요, 이미 새로운 삶을 경험한 국민들은 예전의 어두웠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고 결국 7월 혁명을 일으켜 파리를 손에 넣습니다.

 

이에 샤를 10세는 베르사유 궁으로 도망을 가고 루이 필리프가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7월 왕정을 세웁니다. 그는 민주주의의 대표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왕조 자체가 이미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았습니다. 1848년 2월 혁명이 발생하면서 7월 왕정도 끝내 막을 내리고 맙니다.

 

임시정부는 프랑스 제2 공화국 성립을 선포하고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을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하지만 야망을 품고 있던 루이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국민투표로 군주제를 복귀시키는데요, 1852년 프랑스 제2 제정이 정식 설립되면서 루이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3세로서 황제에 즉위합니다. 나폴레옹 3세는 독재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면서 황제와 정부에 반대하는 자는 즉시 감옥에 넣을 수 있다는 안전법을 통과시킵니다.

나폴레옹 3세

이에 프랑스에는 백색 테러의 공포가 치솟게 됩니다. 나폴레옹 3세는 유럽 각국과 정복전쟁을 펼치다가 주변국들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데요, 그는 전쟁을 빌미로 정치적 생명을 늘려 보기 위해 프로이센과 전쟁을 일으켰다가 포로로 잡혀 항복합니다.

 

이에 임시정부가 프랑스 제3공화국을 설립합니다. 같은 해 파리 시민들은 사회주의 자치 정권인 파리 코뮌을 세우지만 제3공화국이 이를 진압합니다. 이후 내부 분열이 일어나 왕당파와 공화파가 군주제와 공화정 사이에서 대립하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공화파가 승리하면서 공화제는 프랑스의 명실상부한 정치체제가 됩니다.

 

이후 프랑스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였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확대합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프랑스는 방어가 최고라는 생각에 국경에 마지노선을 건설합니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는 비시 프랑스와 자유 프랑스로 양분화되면서 제3 공화국이 막을 내립니다.

샤를 드골 대통령

비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협력했으나 자유 프랑스는 결국 땅을 되찾고 승리를 거둡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임시 정부를 거쳐 1946년 헌법이 발효되었고 제4 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이후 식민지의 독립운동 등의 문제로 혼란에 빠지다가 결국 1958년 국민투표로 샤를 드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프랑스 제5 공화국이 세워진 후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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